섹스의 도
섹스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운전중에 딴 생각을 한다는 것은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피해야 할 행동이지만, 운전을 오래 해본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멍하게 운전하고 정신을 차릴때쯤에는 도착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것. 너무 익숙해져버리면 새롭게 상점가에 세워진 입간판도, 날은 추워도 스킨쉽의 농도는 짙다못해 (부러움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귀여운 연인들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딱히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게되죠.
게다가 초행길이라고 치면, 더욱 산만합니다. 차선을 제대로 잡고 가고 있는지 신경이 곤두서있고, 때마침 알려주는 속도위반 알림이라던지,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을때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건가’ 생각이 들때도 있겠죠.
역시 마찬가지로 주변의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불편한 심리가 계속 이어집니다. 약속이 있거나 하다면 더더욱.
그래서 굳이 판단해보자면, 중간정도가 제일 적당합니다. 길도 어느정도 익숙하고, 너무 나른하게 자신을 놓을 이유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움직임과 거리의 풍경이 운전하는 내내 오버랩되어 비쳐 들어오고, 함께 분위기에 동화되는 것 또한 즐거움이 됩니다.
평범한 드라이빙을 마음의 터치가 쉽게 바꾸어 놓는 마법은 별게 아닙니다. 옆자리에 누군가가 타고 있으면 됩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적당한 긴장감이 세포 하나하나를 일으키고, 몇가지의 선택지안에서 결론을 유도하는 것은 일도 아니니까요.
결국 그렇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한쪽에 치우쳐 있으면 모양이 좋지 않습니다. 경계선은 아슬아슬하지만, 언제든 자신 또는 타인이 원하는 가치에 부합된다 느끼면 한발짝만 움직이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중용의 도(道)가 있고,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그리고 섹스에서도 마찬가지의 형태를 드러냅니다.
이태리장인은 섹스칼럼을 적고 정보를 제공하지만, 말미마다 강조하는 것 또는 따로 드러내어 종종 주지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섹스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 받아들이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것도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야 한다’ 적어도 섹스에 관한 한, 절대적으로 부합하는 공식은 없고, 또한 무조건 허용되지 않는 접근제한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이죠.
예를 들어봅시다.
성기의 크기가 중요한가요?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성기길이는 6cm이상만 되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고, 12cm정도가 평균입니다. 라고 대답하는것이 일반적인 성상담가들입니다. 너무 크면 아파요. 크다고 다 좋은거 아니에요.
머리가 안좋은데 좋은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노력하면 됩니다.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사실 머리가 너무 안좋으면 미친듯이 노력을 해서 연고대는 가더라도 서울대, 카이스트나 포항공대는 못가는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하드웨어가 부족한 사람들을 위로하는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들도 알고 있습니다. 섹스할때 상대가 얼마나 불만족스러워 하는지를 느끼는 정도의 눈치가 있다면.
성기가 작으면 테크닉을 통해서 부족한 부분을 어느정도 보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기가 크다면 테크닉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자극하고 꽉찬 밀도감을 통해 대부분의 스팟을 두루 자극하며 쾌감을 줄 수 있겠죠.
비정상적으로 크지 않은 다음에야 섹스에서 안좋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요. 물론 자신의 거대함만 믿고 설치는 착각에 중요한 것을 놓치는 예시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파트너와의 섹스, 원나잇상대와의 섹스가 애인, 배우자와의 섹스보다 못하다고 폄하하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그 논리를 빌어 확인하자면 폐경 직전까지 가면 갈수록 상대와의 속궁합이 상승곡선을 타고 최고점을 찍어야 정상이겠죠.
하지만 그전에 섹스리스로 끝나는 부부가 얼마나 많고(이유도 다양합니다. 둘의 섹스? 자녀의 양육이 우선 등) 오래된 연인의 경우 게시판만 봐도 지루함의 극을 달리는 섹스에 혀를 내두른 에피소드가 얼마나 많았던가요.
물론 오래된 연인일수록 섹스할 때 엔돌핀이 많이 분비되기는 하죠. 그치만 엔돌핀은 안정적이고 평온한 기분을 주는, 통증완화에 한몫을 하는 호르몬일 뿐, 희열과 벅찬 감동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파트너와의 섹스를 통해 생성되는 페닐에틸아민,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도파민등의 자극이 더 강하고 끝내주는 감정공유의 기본이 되는거죠.
남녀의 연인관계에서 섹스를 통해서 만족감을 주는 주된 호르몬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인데, 극도로 분비되던 이 호르몬도 1~2년후에는 정상수치로 다시 돌아옵니다. 편안함, 소속감만으로 모든 희(喜)를 대변할 수 없는데도 줄곧 그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요.
정말 중용의 도를 깨우치려면,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다른 사람도 느낀다는 것. 단지 그것의 표현방법의 차이가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이 그것에 대해 지적하면 한발짝 뒤로 물러나서 다시 바라보고 인정할것은 인정하고 그래도 자신이 옳다 싶으면 다시 또 생각해보는것’ ‘다른사람의 처지와 환경을 이해하고 내 공식에 적용시키지 않는것’
더군다나 십인십색으로 가치와 방법론이 확연히 차이나는 섹스의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글을 잘 적는 사람도 많고, 섹슈얼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도 많으며,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섹스의 신이고, 최고의 가치를 지닌 리더다, 라는 결론을 내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남아돌아 양으로 때우는 저같은 사람도 단지 군중속의 일부일 뿐이며, 극히 단순하게 살고 있는 일반인일 뿐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글로 다른이를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더욱 노력하면 내경지에 이르게 될것이다, 라는 건방짐을 묻히고 다니지도 않습니다.
단지 끊임없이 배설(!)을 할 뿐, 그걸 즐겨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고마울 뿐이고. 그래서 그들의 지적을 인정하고 수용합니다. 나 자신이 그다지 별것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민감해하지도 말고 비난하지도 욕하지도 말고 있는것 그대로를 받아들이세요. 내가 하는 일이 가장 좋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을 합시다.
섹스? 알고보면 별거 없습니다.
적당히 흘러가는 얕은 오르가즘도, 혼절하고 눈물나는 메가오르가즘도 다음날 일상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지 흥미로울 뿐, 그리고 섹스가 우리 생활에 밀접하기에 더 찾아보려고 애쓰는 것일 뿐입니다.
정답도 없고, 정해진 방법도 없으며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기준도 없습니다. 그냥 있는대로 즐기세요. 그래서 그 안에서 자신의 도(道)를 찾길 바랍니다. 그 와중에 누군가의 목적없는 끄적거림이 도움이 된다면 재밌는 후일담으로 남을 뿐이고 말이죠.
역시 섹스가 끝나고 나면 글이 엄청 산만해집니다.(기가 빠져서 그런가..) 그래서 오늘은 요약을 첨부합니다.
오늘의 요약 :
1. 가르치려들지 말자
2. 꼴리는대로 섹스해라
3. 내 기준은 나에게만 절대적이다
4. 어쩌면 나에게도 절대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