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의 프로세싱

일단 권태의 인터넷 사전적 용어를 확인해봅니다.

권태 :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

온갖 상황에서 자주 찾아오는 감정 중 하나. 가까운 관계의 사람 사이에서도 상당히 자주 찾아오는 감정이며, 매우 즐기던 취미조차도 이게 오면 한 방에 하기 싫어지는 일로 변모하는 무시무시함을 보여준다. 권태감을 자주 느끼는 사람은 작심삼일이나 의지박약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성체질이 되면 니트가 된다.



일단 권태감은 호르몬 중 하나인 도파민이 부족하거나, 지속적으로 도파민에 노출되어 보상중추가 맛이 가 의욕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결과라고 합니다. 게임이나 포르노 등으로 과도하게 보상중추를 중독시키는 경우나, 비타민 D 등이 부족해서 도파민을 만들지 못하는경우 만성적인 권태를 느끼기 쉬워지죠.

보통 사랑의 유효기간이 1년반에서 2년정도라고 하죠. 도파민의 안정적 분비가 실효되는 시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호르몬이 더이상 상대에게 두근거림을 느끼지 못하게 되거나 혹은 지속되는 두근거림이 일상이 되어 더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유통기한이기도 하죠.

그래서 연인들의 대부분은 결혼이라는 새로운 관계로 시작점을 재설정하거나, 혹은 헤어지거나 등의 결론을 어떻게든 맺으려 합니다.

이도 저도 아닌채 서로에 대한 혼탁해진 감정을 고만고만 이어나가는 안일한 상황을 우리는 흔히 권태기라고 하죠. 그리고 이러한 권태기는 자주 싸우는 커플보다 오히려 거의 싸우지 않는 커플에게 더 자주 발생하고 더욱 치명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연애를 하면서 싸운적이 없다고 하는 커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어느정도 접할때가 있습니다. 이들은 만날때마다 행복하고 죽고 못살만큼 서로를 좋아하기 때문에 갈등상황이 아예 없고, 그래서 싸울일이 없다. 는 결론으로 마무리한다면 좋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죠.

이들에게도 분란의 씨앗은 언제든 발아할 수 있고, 갈등은 시간과 장소를 고르지 않습니다. 단지 정말 대립과 싸움이 되기 전에 이들은 상황을 해결하거나 혹은 숙이거나 또는 피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대상이 없는데 쉐도우복싱은 한계가 있을수밖에 없는거죠.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렇기 때문에 내재된 체념의 에너지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 상대에 대한 체념, 포기 감정을 묻어두는 능력들이 쌓여나가며 어느덧 현재의 연애상황에 대한 지루함을 가지게 되는거죠. 서로가 있어 행복하고 좋은 감정들은 일상이 되어가며 점점 둔감해집니다. 그렇게 권태가 시작되는거에요. 싸우지 않는 평화속에 숨겨 들어온 칼이 되어 서로를 덮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평화속에 불안감은 점점 퍼져갑니다. 싸움에 대해 대처하는 법을 잊고싶을 정도로 두렵고 지금의 안온함을 지키기 위한 에너지 소비를 통해 몸과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지쳐가죠. 반복되는 일상에도 지쳐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권태는 몸과 마음을 잠식하는데 시간을 그리 잡아놓지도 않습니다. 아주 금방이죠. 그러고는 각자 나름의 결론을 내게 됩니다. 좋은 방향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에요.

이렇듯 싸우지 않는 커플의 권태는 아주 치명적입니다.

권태기가 무서운 이유는 이들이 거쳐온 시간들만큼이나 자신들에게 다가온 권태를 해결할만한 큰 의지가 서로에게 전혀 없다는 사실때문입니다. 즉 해결책이 딱히 없다는거죠. 익숙함을 벗어나는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성감대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점점 인스턴트식으로 변해가는 오래된 연인들의 섹스처럼 변화라는 키워드가 이들 커플에게는 못내 어색하기만 합니다.

서로간의 권태가 온 커플들에게 할 수 있는 극약처방은 (스스로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 지금 너무나도 당연한듯이 있어온 상대가 없다는 상상을 하게 되는 심리적 요법부터 시작을 합니다. 각자가 합의하는 ‘당분간 서로 휴식을 가지자’는 의미와는 달라요.

이때는 타의에 의해서 연락을 끊고 SNS활동등의 대외활동도 자제를 합니다. 멀리 떠나는것도 괜찮습니다. 순수하게 혼자인 시간을 만들어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일상에서 사라진 사람을 상상하며 그(그녀)와의 기억에 남는 여러 에피소드를 찾는 활동을 통해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알아가는거죠. 이를 통해 다시 연애 초기의 에너지를 얻어가는 커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동물에게 항상 존재하는 자극의 역치입니다. 같은 이유로, 같은 느낌으로 권태는 다시금 신속하게 몸과 마음을 잠식하게 되죠. 이때는 처방이 크게 소용이 없을 정도로 점점 빠르게 내성을 가져가게 됩니다.

이때쯤의 단계라면 잔인하지만 결론을 내야 합니다. 결혼이라는 또 다른 사회화를 통해 신선함을 얻고 도파민을 다시금 분비하게 만들것인가, 또는 아예 정리를 해 관계의 종점으로 치달을 것인가 하는.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죠.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진 않았습니다.

* 자주 싸워서 서로간의 권태가 왔다는 것은 사실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때는 반복되는 싸움에 심리적으로 지쳐서 피해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죠. 또는 얼굴 마주하기도 싫을만큼 대립이 있다던가.

* 적다보니 섹스에서의 권태도 한번 적어봐야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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