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믿지 말아요 2

“헐, 그런일이 있었어요?”
“하… 나도 어이가 없다”

민호는 신기하기도 하고 당황이 묻어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갑은 멀쩡하구요?”
“음, 그게 신기한게, 다른건 건들지도 않았어. 그냥 자기만 쏙 빠져버린거랄까.”

차라리 메모라도 적어놓고 갔으면 무슨 이유였는지 알기라도 하지. 사실 내 입장에서는 그녀가 발기만 시켜놓은채(=발튀?) 사라진 이유에 대한 호기심이 바람맞은 분노를 살짝 앞서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도대체 왜? 나름 눈치가 빠른 민호는 내 얼굴빛에 바르작거리는 우울함을 놓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형, 택배 보낼거 있다 하지 않았어요?”
나는 손바닥을 부딪히며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맞다. 아버지가 뭐 좀 부탁한게 있어서, 까먹을뻔 했네”
“우체국 가는거죠, 제가 갔다올까요? 나도 보낼거 있는데 ㅎ”
“고맙지만 팩스보낼것도 있고.. 괜찮아,”

좀 있으면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번호표를 뽑고 얼마 되지 않아 급하게 테이핑한 박스를 들고 창구에 선 나는, 다소 의기소침해진 모습으로 말했다.

“지금 보내면 내일까지 가는거죠?”
“네,”

그제서야 나는 그제서야 창구 맞은편에 앉아있는, 어제 바람같이 사라진 그녀를 발견해버렸다.


잠시 나온 건물 밖에서 우리 둘은 어색하게 서 있었다.

“클럽과 모텔에서 보다가 우체국에서 보니까 낯설어 죽을 뻔하다는게 이런거구나. 했다”
“…”
“뭐, 할말 없고?”

그녀는 잘 다듬어진 손톱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할 말이 없을거라 예상은 했기 때문에 가볍게 씩 웃어보였다.

“담부턴,  다른 남자에겐 그러지 마라. 기대 잔뜩하게 해놓고 말야. 예쁘질 말던가.”

돌아서려는 찰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윗치라고 알아?”
“응?”

여성들을 유혹해서 원나잇 섹스를 하는것을 목표로 하는 부류들이 있다. 흔히 픽업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이들은, 여성의 샤워하는 모습이나, 섹스 후 사진등으로 인증을 하곤 하는데, 이러한 남자들의 행태를 잡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라고 하는게 ‘윗치’, 그러니까 마녀라는 모임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뭔가 들어본 적도 있는것 같다. 선배가 이야기하던 그들인가.

이들은 픽업 아티스트들을 구분해내고,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는 척 하면서 모텔이나 호텔로 들어간 다음, 그가 샤워등을 할때 사라져버리는데, 이때 이들은 인증샷으로 남성을 조롱하거나 가끔은 남성의 신상을 까발려서 자신들의 커뮤니티에 공개하는 행위도 서슴치 않는다고 한다.




“… 그런데 그건 좀 위험하지 않나?”
그녀는 살짝 웃었다.
“어차피 픽업하는 애들은 여자 울렁증이 있어서, 그거 극복하려고 하는 불쌍한 애들이 많거든. 그러니 딱히 겁날건 없어”

“흠.. 그래,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가 픽업.. 뭐 그런 건줄 알았다는 거군”

그녀는 다시금 주눅든 표정으로 변했다
“그런건 아니었는데, 오빠도 알다시피 그런쪽 애들하고 오빤 많이 달랐거든. 클럽에서 만나서 모텔까지 들어가는데,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무슨 식당에 밥먹으러 가는 기분이었달까;;; “

“…그정도였냐. 그래서?”
“씻고 나와서 갑자기 내가 울컥한거야. 난 이렇게 자연스러운 원나잇에 익숙한 편이 아니었거든”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본능적으로 반발심이 일어났다는건가. 얘도 참 특이체질이군’
“…일단 미안해”

별수 없다는걸 깨달은 나는, 달리 이 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점심시간 뺏어갔으니까, 반정도 퉁치고… 나중에 밥이나 사”


그녀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오빠 연락처는?”
“ㅋ 창구 앞에 있던 네 명함 가져가니까 나중에 연락할게. 그나저나 웃기긴 하다.”
“뭐가?”

“클럽메이크업이랑 우체국메이크업의 차이를 바로 접하니까, 사람 이미지 변신하는건 뭐 순식간이구만”




“형, 그래서 걜 그냥 두고 온거에요? 뭐라고 좀 하지”
전화기 너머로 한숨소리가 밀려왔다.
“이바닥이 사람을 무정하게 만드는거지 뭐.. 내가 어쩌겠냐”
“연락처는 받았어요?”

난 히죽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다만, 명함 안가져왔다 ㅋ 다시 볼 일도 없을테고”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걸 안 건, 그 주 금요일밤이었다. 정확히 4일 후 클럽 라운지에서 나는 그녀와 만났다.


(3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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