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믿지 말아요 4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어. 뭔가 맘이 통하는것 같기도 하고 관심사도 비슷하고, 처음에 맘에 들었다며 다가왔을때는 좀 놀라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는데, 몇번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사라지는걸 느꼈어.”

그녀는 JM을 잔에 따라 부었다. 술이 유난히 약한 나는 그저 적당히 그녀가 마시는지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으나, 다행히도 그녀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듯 했다.

“어느날 술을 마시고 둘이 모텔에 가서 그가 씻는동안 갑자기 온 알람에, 나는 무심결에 보고야 말았거든. 우리가 만나서 섹스를 하게 되는 모든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가 되고 있었고, 예의 ‘홈런’이라는 그들의 용어로 내가 쏟은 마음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그런 것”



“픽업아티스트… 뭐 그런거였구나?”



그녀는 고개를 힘없이 끄덕거렸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놀며 하나의 유흥거리로 전락되는 느낌이 어떤건지 그때 알게 된 후, 난 윗치에 가입해서 활동하기 시작했어. 그들이 놀아나는 모습을 볼때마다 얼마나 통쾌하고 우습던지.. 난 남자 마음이 그렇게 갖고놀기 쉬운 것들인지 몰랐거든. 문제는 그렇게 되고 나면서부터, 나도 점점 그들과 같아지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거지.”

나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녀도 희생양이었고, 성적 유희로만 가득찬 이 공간에 남겨진 가련한 캐릭터인지도 몰랐다.

딱히 내가 해 줄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 픽업 뭣이냐, 만 아니다 뿐이지 나도 여자들과의 하룻밤 섹스가 일상이 되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에. 뭐 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라던지, 혹은 변명을 해준다던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뭔가 이 상황에서 적당한 말을 해야만 하긴 했다.

“사람에게는 각자 주어진 홈그라운드가 있어”



그녀는 살짝 붉어진 볼을 손등으로 어루만지다, 나를 바라보았다.

“… 그곳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있는게 그 사람을 제일 빛나게 하는거고, 넌 딱히 여기에 어울리는 타입은 아냐.”
“…”


“여긴 일주일의 주기로 돌아가는 세상이야. 매7일마다 환락의 도가니에서 서로의 영혼은 어디로 팔아버리고 쾌락에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그런 곳이지. 사람들은 제각기 그런 자신에 만족하면서 살아. 그런데 넌 그렇지 않을것 같고.. 쟤네들을 봐”




모니터에 비친 스테이지에서는 각양 각색의 피플들이 정신없이 몸을 흔들고, 끝없이 오늘 자신을 품어줄 상대를 찾아 헤메이고 있었다.

“저들에게는 오늘이 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차편을 손에 쥘수 있는 기회야. 하지만 웃기게도 오늘이 지나면, 그들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오지. 어차피 잊어버리니까, 그들에게는 쾌락의 기억만 살짝 남아있고, 그래서 다시 기회가 되면 주저없이 손을 내미는거야.”

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넌 그럴수 있어?”

대답대신 그녀의 입술이 다가왔다.
이게 그녀의 생각끝에 나온 결론이라 여기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심경을 내가 파악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거절할 명분이 어떤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의 혀가 반쯤 벌어진 내 입속을 파고드는 그 순간에도.

서로의 입이 밀착되어 타액을 교환하는 동안, 그녀의 두 손이 내 목을 감싸안고 뱀처럼 온몸이 감겨들기 시작했다. 선악과를 처음 따 먹은 아담의 심장처럼, 나는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탄력있는 가슴이 눌려 부풀어오르는 느낌을 온몸으로 받으며, 어느덧 나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등을 어루만질때마다 움찔하는 것이 느껴질만큼, 그녀는 흥분해있었다.

“나…”
촉촉하게 젖은 입술을 떼며 그녀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지금 손 내밀어 보려고”

그리고 우리는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옷을 벗기기시작했다.



(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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